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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곱물음표] ‘걸캅스’로 흥행 거머쥔 이성경…진심이 통했다 (인터뷰)
  • 등록일 : 2019.06.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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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재 기자] 5월9일 개봉작 ‘걸캅스’ 지혜 役

배우 이성경(28) 방에는 피아노가 한 대 있다. 영창일까? 삼익일까? 잠깐의 생각 끝에 나온 답은 후자. 만일 카페를 차린다면 그곳에 놓을 만큼 아끼는 피아노다.

어린 이성경은 피아니스트가 되고 싶었다. 그런 그가 엄마 손에 이끌려 마을버스에 몸을 싣는다. 어디로 가는 길일까. 웃음을 참지 못하는 엄마를 따라 그도 같이 웃음을 터뜨렸다. “‘피아노 사러 가지? 피아노 사러 가?’ 다 기억나요. 초등학교 4학년 때 일이었어요. 버스에서 엄청 큰 소리로 ‘피아노네!’ 했죠.” 소리가 좋을 리 없는 중고 피아노였다. 그럼에도 제일 높은 도를 쳤을 때 새소리가 나는 피아노를 가질 수 있어 마냥 행복했다.

그 꿈은 고3 때까지 확고부동했다. 하지만 이 글을 읽는 모두가 알다시피 지금은 다른 길을 걷는 중이다. 모델 겸 배우가 된 것이다. 부모님 권유를 계기로 런웨이에 섰고, 김규태 PD(SBS ‘괜찮아, 사랑이야’)의 발탁으로 카메라 앞에 섰다. “사람 일 어떻게 될지 모른다”는 게 그의 소회다. 아쉬움은 있고 미련은 없다. “지금이 행복”해서다.

사실 거리서 만나는 이성경의 눈은 간판임에도 불구, 매혹적이다. 고양이가 떠오르는 그 눈과 얼굴에 기대하는 것은 사실 ‘내면’보다 ‘외양’임을 부정할 수 없다.

그러나 서울 종로구 삼청로 한 카페에서 만난 이성경은 화려한 겉모습만큼 내면도 멋졌다. 화려하기에 새침할 것이란 편견을 부순 것이다.

피아노를 새 친구로 사귄 그때도, 처음과 꿈이 달라진 현재에도 그는 늘 행복하다. 또 그 행복의 공유는 그의 “비전(Vision)”이기도 하다. 그를 응원하는 관객에게 느낀 감사, 현장에서 좋은 선배들에게 받은 축복, 이성경은 그 모든 감정을 융합해 남에게 위로를 주고 싶다고 말한다. 힘들고 지친 이의 손을 잡아 주는 것이 그의 이상(理想)이다.

엄마는 마음이 아팠다. 얼굴 빨개져 가며 멜로디언 부는 딸이 안쓰러웠기 때문이다. 그가 딸에게 건넬 수 있는 최선의 위로가 바로 피아노였다. 복은 대물림된다. 이제 그 아이는 자라서 웃음과 공감으로 위로를 주는 배우가 되려 한다.

“제가 많이 화려해 보이던가요?”

편견을 깨는 인터뷰였다는 후술에 그가 되묻는다. 그 화려함 이면에 진심이 있다. 새침하기는커녕 도리어 친화력을 선보인 그와의 인터뷰를 총 일곱 문답으로 전한다.

 

―영화 ‘걸캅스(감독 정다원)’에서 지혜 역을 맡았어요. ‘걸캅스’는 간만에 만나는 코미디 영화고, 디지털 성범죄를 다루는 등 시의성도 갖췄습니다.

“저랑 유머 코드가 너무 잘 맞더라고요. 재밌는 영화를 보고 싶다는 갈증이 있었는데 시나리오를 덕에 웃음이 빵빵 터졌죠. (기자-MBC ‘역도요정 김복주’ 출연 이유도 시나리오가 너무 재밌어서라고 알고 있어요.) 맞아요. 아무래도 책이 재밌어야 손이 가더라고요. 무겁고 어려운 내용을 다룬다고 생각하시는 분도 계시겠지만 ‘걸캅스’는 무거운 범죄에 유쾌히 접근하는 영화예요. 웃고 즐긴 후엔 사회 문제에 작은 온도를 갖게 되는 영화이기도 하죠. 한마디로 ‘무거운 소재를 무겁지 않고 유쾌하게 다루는 영화’예요.”

―이 영화가 재밌는 이유는 지혜와 미영(라미란)을 비롯, 단역까지 개개가 특색을 갖고 있어서죠. 한편, 지혜는 코미디를 유발하기보다 그것을 지켜보는 역이에요.

“맞아요. 지혜는 미영을 받아주는 롤이죠. 그래서 웃기고 싶은 욕심 등을 최대한 자제했어요. 소위 임팩트는 없어요. 하지만 제가 뭘 만들어내려고 했다면 너무 튀지 않았을까요? 받아주고 또 웃기기까지 하는 건 연륜이 생겨야 가능할 듯해요. 감독님께서 저와 미란 선배님께 기대하신 건 ‘델마와 루이스’ 같은 여성 콤비 영화의 케미였어요. 그때 가제 중 하나가 ‘미영과 지혜’였을 정도로 케미 걱정을 많이 하셨어요. 참고한 영화는 없어요. 참고는 참고일 뿐 케미는 현장에 가 봐야 아는 거니까요. 그 점에 있어 미란 선배님께 여러 가지로 감사드려요. 제가 처져 있는 거 같으면 먼저 다가와서 웃겨 주시고, 또 대사 같은 게 생각만큼 안 될 때는 조언도 많이 해주셨어요. 지혜와 미영의 케미는 선배님의 공이 컸어요. 후배의 작은 마음까지도 신경써 주신 그 따뜻함에 정말 감동했습니다.”

영화 제목이 정말 ‘지혜와 미영’이었으면 어땠을까요. 제목에 단어 ‘걸(Girl)’이 들어갔다는 이유로 개봉 전부터 젠더 이슈의 중심에 선 ‘걸캅스’예요. 대체 걸이 뭐길래. 영화 개봉 전부터 기대 대신 비판 받는 일에 주연 배우로서 속상함이 크겠어요.

“이렇게 화두가 될 줄은 몰랐어요. 본의 아니게 여러 사안-‘걸캅스’는 젠더 이슈에 ‘클럽 버닝썬 사건’을 연상케 하는 극 중 범죄까지 여러 암초를 만났다.-이 겹쳤고요. 하지만 제일 걱정된 건 관객 분들의 반응이었죠. 영화가 끝난 후에 어떤 평가를 내리실지가 제일 걱정됐어요. 긴장됐고요. 딥해질 만하면 틀어버리고 진지해질 만하면 웃겨버리는 게 우리 영화의 매력이라고 생각해요. ‘걸캅스’만의 매력과 결이 있기에, 또 클리셰를 풀어내는 방식은 저마다 다르기에 작품에 어떤 매력이 있는가를 한번 봐주셨으면 해요.”

 

어린 지혜는 형사 미영의 활약을 보고 “여자도 형사가 있구나” 하고 감탄해요. 이성경은 어때요? 모델을 하다 연기에 도전하게 된 특별한 계기가 있나요?

“갑자기 작품 제안이 들어왔어요. 김규태 감독님의 ‘괜찮아 사랑이야’란 작품이었죠. 다듬어지지 않은 새 얼굴이 오소녀를 연기하길 바라셨대요. 그때의 전 연기는 아무 것도 몰랐어요. 연기를 배운 적이 없으니까 대사 한마디 하고 ‘이상하죠?’ 하며 부끄러워하기 일쑤였죠. 김기태 감독님은 제 은인이시죠. 김기태 감독님 하고 노희경 선생님은 저 이성경이 배우로 다시 태어나게 해주신 분들이기에 언제나 감사드리는 마음뿐이에요.”

모델 이성경에게 연예계는 멀게만 느껴지는 곳이었다. 모델과 연예인은 서로 다른 존재라고 여긴 것. 하지만 학교에서 3년 동안 체육 부장을 맡은 것은 물론, 포즈 하나를 취할 때도 뮤지컬 하듯 하는 그에게 주위 사람들은 ‘너도 그런 거 해보는 거 어때?’ ‘넌 그런 거 안 할 거야?’를 매번 묻곤 했다. 연예인은 엄청 예쁜 사람들만 하는 줄 알았다. 하지만 인생에도 전과(轉科)가 있다면 그는 두 번째 전과마저 성공해내고 만다.

하지만 꽃길만 걷진 않았다. ‘걸캅스’ 촬영 전, tvN ‘멈추고 싶은 순간: 어바웃 타임’ 촬영 즈음, 그는 고민을 만났다. 정다원 감독은 “성경 씨 마음대로 했으면 좋겠다”고 했지만 그 마음대로 하는 게 힘든 때였다. 자유롭지 못했고 생각도 고민도 너무 많았다. 이성(理性)적 고민이 커지니 상대적으로 감성이 깨졌다. 자신감이 점차 희미해져 갔다.

그가 아무리 감정을 진하게 느껴도 보는 사람이 못 느끼면 의미가 없다는 것이 고민의 골자였다. 공감을 끌어내야 한다는 부담이 생기자 과거 그가 스스로에게 한 다짐 ‘진심으로 연기하자’는 ‘근데 그 진심을 전하는 방법이 뭐지?’로 바뀌었다. 이성이 감성을 이기는 순간 그는 어딘가에 매여 있는 듯한 기분에 많이 힘들어 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그 위기를 어떻게 이겨냈나요?

“선배님 한 분의 말씀이 큰 위로와 힘이 됐어요. ‘고민하는 배우가 성장해. 고민도 못하는 배우가 얼마나 많은데. 근데 넌 고민하잖아. 넌 성장할 거야. 감사하게 생각해.’ 전에는 고민이 저를 더 못하게 하고 더 바보로 만들까 봐 그게 제일 걱정됐어요. 근데 이제는 아니에요. 고민이 전보다 나은 저를 만든다는 걸 지금은 알아요. ‘걸캅스’에서도 도움을 많이 받았죠. 감독님과 미란 선배님께서 제가 거기서 빨리 헤어 나오도록 도와주셨어요.”

이날 이성경은 역할의 감정을 온전히 느꼈을 때의 희열이 그에게 힐링을 안긴다는 점에서 그것을 하나의 성공이자 작은 성취로 여겼고, 영화 ‘레슬러’를 통해 선배 성동일이 건넨 ‘성경아 이거 누가 뭐래도 네 영화야’란 조언을 상기하며 그의 마음가짐을 공유했다. 또 그는 “연기와 다르게 영화 제작은 3, 4년 전부터 작품 하나만을 바라보고 모든 걸 쏟아내는 일”이라며, “내가 그 중심에서 함부로 하면 안 되지 않나”라고 했다.

앞으로 어떤 배우가 되고 싶나요?

“대중 분들께 신뢰를 주는 배우가 되고 싶어요. 작은 바람을 보태자면 여운을 주는 배우가 되고 싶고요. 여운이라고 했지만 거창한 건 아니에요. 현실적 공감에서도 신나는 웃음에서도 모두 여운은 남으니까요. 사람으로서도 여운을 남기고 싶고요.”

유독 ‘첫’이 많은 배우이기도 합니다. ‘첫 TV 드라마 출연(괜찮아, 사랑이야)’ ‘첫 TV 드라마 주연(역도요정 김복주)’ ‘첫 영화 출연(레슬러)’ ‘첫 영화 주연(걸캅스)’까지. 마법 같은 순간이 아닐까 싶어요. 가끔은 지금이 실제인가 싶기도 한.

“아직도 그래요. 촬영장에 서 있으면 ‘내가 뭐라고 여기 주인공으로 서 있지?’란 생각이 들곤 해요. 극장에 제 얼굴 걸려 있는 것도 아직 신기하기만 하고요. 그래서 그간 제가 받아 온 복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좋은 선배님들께 받은 좋은 위로와 축복 등을 나중에 꼭 누군가에게 전해줘야 한다는 생각이 있어요. 그리고 꿈과 별개로 비전도 있어요. 이것도 거창한 건 아니에요. 이름만 비전이죠. 어렸을 때부터 가져 온 바람인데 누군가에게 위로가 되는 사람이 되고 싶어요. 아프거나 힘든 사람이 주변에 있다면 지금 제가 서 있는 이 자리에서 그 사람 손을 잡아 주고 싶은 거죠. 근데 제 코가 석 자라.(웃음)”

영화 ‘걸캅스’는 결혼 후 민원실 내근직으로 일하게 된 일명 ‘전설의 에이스 형사’와, 초짜 형사가 우연히 범죄 사건을 쫓게 되는 코믹 액션 수사극. 5월9일 개봉. 15세 관람가. 5월26일 누적 관객수 153만 8188명 기록한 ‘걸캅스’는 손익분기점 150만 명을 넘어서며 흥행에 성공했다. 배우 이성경의 ‘첫 영화 흥행작’이 된 셈이다.(사진제공: CJ엔터테인먼트)

 

 

[bnt뉴스 기사제공]